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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말씀/말씀 모음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1-10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1-10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고 나서 인류가 패괴된 후이든지 아니면 인류가 그를 따를 수 있든지 그는 인류를 그의 지친(至親)으로 삼았다. 즉 인류가 말하는 가장 친한 사람으로 삼은 것이지 장난감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비록 하나님이 자신이 조물주이고 인류는 피조물이라고 한 이 말씀은 듣기에는 등급의 차이가 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한 모든 것은 이 관계를 훨씬 넘어섰다.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고 인류를 돌보고 인류를 걱정하며 그가 끊임없이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는 것까지 포함해 그의 마음속에서 여태껏 별개의 일이라고 여긴 적이 없고 여태껏 이것이 공로가 매우 큰 일이라고 여긴 적도 없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에게 공급하고 모든 것을 베푸는 것이 인류에게 매우 큰 공헌을 하는 것이라고 여긴 적도 없다. 그는 그저 그 자신의 방식으로써, 그 자신의 실질과 그의 소유소시(所有所是)로써 이렇게 묵묵히, 조용히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그에게로부터 얼마나 많은 공급과 도움을 얻었든지 그는 사람에게 공을 바라는 어떠한 생각이나 행동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실질로 결정되는 것이고 바로 하나님 성품의 진실한 나타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든 아니면 어떠한 서적에서든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감지덕지하도록, 그를 찬미하도록 사람에게 자신이 왜 이렇게 하는지, 왜 이렇게 인류를 보살피는지를 서술하거나 설명한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가 슬퍼할 때, 극도로 마음이 아플 때에도 그는 인류에 대한 책임을 잊지 않았고 인류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으며 오히려 스스로 이런 ‘슬픔’과 ‘아픔’을 묵묵히 이겨냈다. 반대로, 그는 늘 예전과 같이 이렇게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다. 설령 인류에게 항상 하나님을 찬미하거나 하나님을 간증하는 표현들이 있을지라도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받아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잘 대해준 것으로 그에 대한 사람의 감사나 보답을 바꾸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날 수 있고 진실로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그 사람들, 그의 말씀을 잘 듣고 그에게 충성할 수 있는 그 사람들, 그에게 순복할 수 있는 그 사람들은 오히려 항상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데, 이 축복은 하나님께 있어서 조금도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축복은 항상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고 또한 사람이 한 것이나 사람이 치른 대가로 바꿔올 수 있는 것을 뛰어넘는다.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이 받은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정확하게 말해서 없다! 노아를 포함해 인류가 그때의 하나님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가? 하나님이 왜 이런 언약을 세워야 했는지 느낄 수 있는가? 느낄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픔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픔’에 닿지 못해서가 아니고 하나님과 사람이 거리가 있거나 지위상의 차이가 있어 초래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어떠한 느낌에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독립적인 분이니 하나님께는 사람의 관심, 이해, 배려가 필요없다고 여기며, 하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아픔이 없고 희로애락이 없고 그가 괴로워할 리가 없고 슬퍼할 리도 없고 심지어 눈물을 흘릴 리도 없다고 여기며, 그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어떤 감정상의 표현도 필요없고 그 어떤 감정상의 위로도 필요없고 만약 어떤 상황에서 그에게 이런 것이 필요하면 스스로 해결할 것이니 사람의 ‘협조’가 필요없다고 여긴다. 반대로, ‘연약하고 유약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위로, 공급, 격려가 필요하고 심지어 언제 어디서나 정서상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이런 것이 숨겨져있다. 즉 사람은 ‘약자’이니 하나님의 온갖 보호가 필요하고 마땅히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자신이 얻어야 할 어떤 것이든 받아내야 하지만 하나님은 ‘강자’이고 ‘전부’를 가지고 있기에 마땅히 사람의 수호자이고 축복자여야 하고 그는 어차피 하나님이고 ‘능력이 뛰어나’ 사람에게서 또 뭘 얻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어떤 유로에 대해서도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하나님의 기쁨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의 모든 표현은 하나님의 안중에 손금 보듯 하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각 사람의 필요를 공급하고 있고 각 사람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으며 이로써 각 사람을 위로하고 권면하고 있으며 각 사람을 인도하고 빛비춰주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 몸에 한 이 모든 것과 사람 몸에 치른 모든 대가를 대함에 있어서 성경 속에서 혹은 오늘날의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서 하나님이 사람 몸에서 무엇인가 받아내려고 한다는 명확한 말씀을 찾아볼 수 있는가? 없다! 반대로,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계속 사람을 인도하고 계속 사람에게 공급하고 도와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해준 아름다운 귀숙을 얻도록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게 한다. 하나님께 있어서는 그의 소유소시, 그의 은혜, 그의 긍휼, 그의 모든 상을 그를 사랑하고 따르는 그 사람들에게 조금도 남김없이 베풀어준다. 하지만 그는 그가 받은 아픔, 그의 마음을 여태껏 사람에게 드러낸 적이 없고 또한 하나님은 여태껏 그를 이해해주지 않고 그의 뜻을 요해하려고 하지 않는 그 어떤 사람도 원망한 적이 없다. 그는 단지 묵묵히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겠는가? 이런 말에서 너희는 또 무엇을 보았는가?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성품에 사람이 가장 쉽게 소홀히 하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여기는 위인, 좋은 사람을 포함해 그 어떤 사람의 몸에나 사람의 상상 속의 ‘하나님’에게도 구비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구비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무사(無私)이다. 무사에 대해 언급할 때 너는 아마 너도 아주 무사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것은 네가 너의 자식을 대할 때 전혀 옴니암니 캐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거나 너의 부모를 대할 때도 무사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네가 어떻게 여기든지 최소한 너는 ‘무사’, 이 단어에 대해 하나의 개념이 있는데 ‘무사’라는 이 단어는 긍정적인 것이고 하나의 무사한 사람이 되는 것은 매우 고상한 것이라고 여긴다. 만약 네 자신이 무사함에 달할 수 있다면 자신이 아주 위대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아무도 만물 중에서, 인사물(人事物) 중에서,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하나님의 무사함을 볼 수 없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사람이 너무나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는가? 사람이 물질세계에서 살면서 비록 하나님을 따르고 있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너에게 공급하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너를 사랑하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너를 걱정하는지를 영원히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네가 본 것은 무엇인가? 본 것은 너와 혈연 관계가 있고 너를 사랑하는 그 사람이고 혹은 너를 아끼는 그 사람이며, 본 것은 너의 육체에 유리한 그런 것들이며,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소위 무사(無私)이다. 바로 이렇게 ‘무사’한 사람이 여태껏 자기에게 생명을 베풀어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비하면 사람의 ‘무사’는 이기적이고 비열함으로 되었다. 사람이 여기는 ‘무사’는 공허하고 비실제적이며 뒤섞임이 있고 하나님과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다. 사람의 ‘무사’는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무사’는 하나님 실질의 진실한 유로이다. 바로 하나님의 무사로 말미암아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끊임없는 공급을 얻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오늘 내가 말한 이 화제에 대해 느낌이 그리 깊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네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때 너는 부지중에 이 세상에서, 네가 느낄 수 있는 인사물 중에서 오직 하나님의 무사만이 진정한 것이고 아주 실제적인 것임을 발견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만이 조건이 없고 흠이 없는 것이며 하나님 외에 어떤 사람의 소위 무사도 다 거짓이고 표면의 것이며 진실한 것이 아니고 목적과 존심이 있는 것이며 거래하고 있는 것이고 시련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이며 더욱이 가히 말해서 더럽고 비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너희는 인정하는가?

  나는 이런 화제들이 너희에게 있어서 아주 생소하여 한동안의 쌓임이 있어야만 너희가 진정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가 생소하다고 여기는 문제일수록, 생소하다고 여기는 화제일수록 너희의 마음속에 결핍한 화제임을 증명한다. 만약 이런 화제를 내가 영원토록 언급하지 않는다면 너희 중에 조금이라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너희가 영원토록 인식하지 못할 거라고 여기는데, 이것은 틀림없다. 너희가 얼마나 깨달을 수 있든지 혹은 얼마나 인식할 수 있든지 간에 어쨌든 내가 말하는 이런 화제는 사람에게 가장 결핍한 것이고 사람이 가장 잘 인식해야 할 바이다. 이런 화제는 각 사람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고 지극히 귀중한 보물이자 생명이며 너희가 앞으로 걸어야 할 길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말씀을 인도로 삼지 않고 하나님 성품에 대한 너의 인식이 없고 하나님의 실질에 대한 너의 인식이 없다면 너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대해 영원토록 물음표를 갖고 있을 것이다. 네가 전혀 하나님을 요해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겠는가? 네가 전혀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의 마음도 모르고 하나님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이 어떤 일로 슬퍼하고 어떤 일로 기뻐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속편)》에서 발췌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1-10

 

관련 하나님 말씀: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타락한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예비한 것으로, 이 구원 속에는 오직 진리, 길, 생명만이 있을 뿐입니다.

www.light-of-truth.org

 

본문출처:하나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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